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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와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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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령류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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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2-18 16:39 조회5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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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서산(瑞山)의 옛 이름이 서령(瑞寧)이므로 서령 류씨라고도 한다.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에 서령군(瑞寧君)으로 봉해진 류숙(柳淑, 1316~1368)의 후손으로, 그의 7대조인 류성간(柳成澗)을 시조(始祖)로 삼고 있다.

서산 류씨는 크게 류숙(柳淑, 1316~1368)의 후손인 문희공파(文僖公派)와 류방택(柳方澤, 1320~1402)의 후손인 정숙공파(靖肅公派)로 나뉘는데, 영천ㆍ경주ㆍ울산 등으로 세거지가 확산되면서 다시 대사헌파(大司憲派)ㆍ무동처사공파(楙洞處士公派)ㆍ판관공파(判官公派)ㆍ한성좌윤공파(漢城左尹公派)ㆍ군수공파(郡守公派)ㆍ태재공파(泰齋公派)ㆍ참판공파(參判公派) 등으로 파가 나뉜다.

류숙은 공민왕의 스승으로 반원자주개혁정치의 설계자이며 주도자로 기철 등 친원세력을 축출하는 데 공을 세우고 홍건적의 난에 위기의 고려를 구하고 충근절의찬화공신(忠勤節義贊化功臣)에 오르고 1376년 배향공신(配享功臣)에 올랐다. 총11회에 공신록에 등재 되었고  서령군으로 봉해졌으나,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 신돈에게 살해되었다. 그의 사촌인 류방택은 천문(天文)에 능해 조선이 건국된 뒤에 하늘의 별자리를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제작에 참여했으며, 조선 건국에 공을 세워 조선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봉해졌다. 더구나 2000년 한국인이 발견한 소행성을 "류방택별"이라 명명하고 매년 서산에서는 류방택 별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처럼 서령 류씨는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명문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조선시대에 많은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 특히 세종 때의 인물인 류방선(柳方善, 1388~1443)과 류윤겸(柳允謙, 1420~?) 부자는 학자로서 이름이 높았다. 류윤겸은 《경국대전》 편찬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두보(杜甫)의 시를 한글로 옮긴 《분류두시공부언해(分類杜詩工部諺解)》를 펴내기도 했다.
-두산백화 참고-